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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멸망을 함께 한 공양왕조선왕들과 오행<7>
토담 김덕영  |  webmaster@daily-liber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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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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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양왕릉
“네, 고려 공양왕은 제34대 국왕으로 본명 왕요(王瑤), 재위 1389년 11월(己巳년 乙亥월 ~ 1392년 7월(壬申년 丁未월), 출생일은 1345년 음력 2월5일생입니다. 사망일 1394년 4월17일 (49세), 왕비 순비 노씨, 부왕 정원부원군, 모후 국대비 왕씨, 이전 왕 창왕, 다음 왕(왕조 멸망), 사주를 적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庚 己 乙 (공양왕의 사주)
? 申 卯 酉

54 44 34 24 14 4 (대운의 수)
癸 甲 乙 丙 丁 戊
酉 戌 亥 子 丑 寅


“묘월의 庚(금)이 태강하여 火를 용신을 삼든지 金일주 태강하면 水를 쓴다. 왕의 태어난 시간이 정확하면 좋겠으나 그렇지 않아 지나가는 년도에서 유추하여 용신을 잡아야 한다.”

“네, 고려의 제34대 왕이자 마지막 왕으로, 고려의 제20대 국왕인 신종의 둘째 아들 양양공의 6대손이며, 정원부원군 왕균과 충렬왕의 서장자 강양공 자(滋)의 손녀 국대비 왕씨의 차남입니다.”

“성은 왕(王)이고 휘는 요(瑤)이며, 공양군(恭讓君)이라는 강칭(降稱)으로 불리다가, 조선 태종이 그를 왕으로 추봉하면서 공양왕(恭讓王)의 시호를 올렸다.”

“네, 공양왕(恭讓王)은 재위한 1389년부터 1392년까지 이성계(李成桂)가 실권을 맡았고, 폐위 후 처음에는 강원도 원주로 유배되었다가 간성으로 유배지가 옮겨졌고, 다시 삼척으로 옮겨진 뒤에 그 곳에서 처형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간성왕(杆城王)이라는 호가 붙여졌습니다.”

“그렇다. 다시 말해 1392년(공양왕 4년, 壬申년) 이성계와 이방원, 정도전 등은 공양왕을 폐하여 왕위가 양위되어, 고려는 사실상 멸망하였다. 이후 7월 11일(壬申년, 戊申월, 庚寅일)에 강원도 원주로 유배되었다가, 8월(己酉월)에 공양군(恭讓君)으로 강등돼 강원도 간성으로 쫓겨났다.”

“공양왕은 강원도 간성에 머무르다가 1394년(태조 3년) 3월 14일(甲戌년, 戊辰월, 癸丑일)에 강원도 삼척 궁촌리로 유배지가 옮겨졌습니다. 4월 17일(己巳월 丙戌일)궁촌리 마을입구 고갯길에 있는 고돌산의 살해재에서 아들인 폐세자 왕석(王奭)과 함께 처형되었습니다. 1416년 조선 태종은 공양왕(恭讓王)으로 추봉을 하고, 사신을 보내 그의 능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공양왕의 능으로 전하는 묘소는 두 개가 있는데, 공양왕의 능은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와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 두 곳인데, 삼척 묘는 처음 묻힌 곳이고, 고양에 위치한 묘는 조선 왕실에서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불러 올린 뒤에 묻은 곳으로 추정됩니다. 2016년 현재는 왕비인 순비 노씨(順妃 盧氏)와 합장되어 있으며 조선 태조의 즉위 3년만인 1394년에 고릉(高陵)의 능호가 붙여졌습니다.”

“음! 고려가 망하고 억지로 왕이 되었다가 처형된 것은 한마디로 기구한 인생이다. 정원부원군 균(鈞)과 그 부인 국대비 왕씨의 둘째 아들로서, 왕후는 교하(交河) 사람인 창성부원군(昌城府院君) 노진의 여식인 순비 노씨이다. 어려서 정창군(定昌君)에 봉해졌고, 그의 형 정양군 왕우의 딸이 이성계와 신덕왕후 강씨의 아들 이방번과 결혼하여 사돈인 관계로 이성계 일파의 추대를 받아 폐가입진(廢假立眞)이라는 명분으로써 왕위 계승자로 천거되었다.”

“네, 친명파 신진 사대부인 이성계와 정몽주 등은 1389년(창왕 1년)에 창왕을 폐위시킨 직후에 공양왕을 옹립하였고, 온건 개혁파였던 정몽주 등의 신하들은 공양왕을 보필하며 고려를 재건하려는 필사의 노력을 하였으나 이성계, 정도전 등은 역성혁명을 꾀하고 있었고 정몽주가 이성계의 5남인 이방원(李芳遠, 훗날의 조선 태종)에게 선죽교에서 살해되자, 온건 개혁파 신료들의 응집력이 약화되어 조정은 와해되었습니다.”

“그리고 1392년(공양왕 4년, 壬申년) 이성계와 이방원, 정도전 등은 공양왕을 폐하여 왕위가 양위되어, 고려는 사실상 멸망하였다. 이후 7월 11일(壬申년, 戊申월, 庚寅일)에 강원도 원주로 유배되었다가, 8월(己酉월)에 공양군(恭讓君)으로 강등돼 강원도 간성으로 쫓겨났다. 공양왕은 강원도 간성에 머무르다가 1394년(태조 3년) 3월 14일(甲戌년, 戊辰월, 癸丑일)에 강원도 삼척 궁촌리로 유배지가 옮겨졌다.”

“4월17일(己巳월 丙戌일)궁촌리 마을입구 고갯길에 있는 고돌산의 살해재에서 아들인 폐세자 왕석(王奭)과 함께 처형되었다. 1416년 조선 태종은 공양왕(恭讓王)으로 추봉을 하고, 사신을 보내 그의 능에 제사를 지냈다.”

“공양왕의 능으로 전하는 묘소는 두 개가 있는데, 공양왕의 능은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와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 두 곳인데, 삼척 묘는 처음 묻힌 곳이고, 고양에 위치한 묘는 조선 왕실에서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불러 올린 뒤에 묻은 곳으로 추정된다. 2016년 현재는 왕비인 순비 노씨(順妃 盧氏)와 합장되어 있으며 조선 태조의 즉위 3년만인 1394년에 고릉(高陵)의 능호가 붙여졌다.”

“네, 한라가 망하고 조선이 세워짐에 따라 여러 명의 고려왕이 죽어갔습니다. 본인의 의사와 달리 억지로 죽은 공양왕과 왕석뿐이 아니고 당시에 왕씨 성을 가진 자들을 수없이 죽였다고 하니 권력이란 무참하고 비정하군요.”

“그렇다. 공양왕이 壬申년에 사실상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인 것을 보면 태어난 시가 丙戌시가 아닌가 생각된다.”

“네, 관식투전의 해에 그렇게 되었으니 그렇게 짐작이 갑니다. 그러나 태조는 壬申년의 用神운에 해당하여 조선건국을 한 것이지요?”

“그렇다. 다음은 태조에 대해 알아보자.”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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