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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피란민 아들, 대통령으로 우뚝 서다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된 문재인
서정민 기자  |  seojm@daily-liber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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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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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반대 시위로 구속… 인권변호사 활동
盧 서거 후 정치인 길… 재수 끝에 ‘당선’


5·9 대통령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제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문 대통령은 서울 수도권 등 전 지역서 고른 지지를 받아 1천342만3천762표를 획득, 득표율 41.08%를 올렸다.

2위인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785만2천843표(24.03%)를 얻어 557만919표 뒤졌다. 홍 후보에 이어 3위를 차지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699만8천323표·21.41%)는 전날 개표가 시작되자마자 각각 당사에 들러 사실상 패배를 인정하는 승복연설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8대 대선서 51.55%(3천59만표)를 득표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3.53%(108만표) 차이로 패배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로 탄핵되면서 앞당겨진 19대 대선서 재수에 성공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일 오후 11시30분 서울 광화문광장을 찾아 "국정의가 바로 서는 나라, 국민이 이기는 나라를 꼭 만들겠다"며 당선 수락 연설을 했다. 문 대통령은 2008년 참여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청와대를 떠난 지 9년 만에 재입성 했다.

실향민의 아들

문 대통령은 1953년 1월24일 경남 거제의 시골 농가에서 2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함경남도 흥남이 고향이던 부모가 6·25전쟁 발발 후 1950년 12월 `흥남 철수' 때 잠시 난을 피한다는 생각으로 월남한 것이 남한 정착으로 이어졌다. 실향민의 아들인 것이다.

가난한 집안형편에도 부산의 명문인 경남중·고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중·고교 때 별명이 `문제아'였을 정도로 문제학생이기도 했다. 실제로 술·담배를 입에 대고 4번의 정학을 받았다. 문 대통령은 고교 시절을 두고 “이름 때문에 `문제아'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나중엔 실제가 됐다”고 우스개 소리를 하기도 한다.

재수 끝에 경희대 법학과에 전액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대학 시절에는 `반유신' 투쟁에 나선 운동권이었다. 1972년 유신 반대운동에 뛰어들어 1975년 학생회 총무부장으로서 시위를 주도하다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학교에서도 제적됐다.

석방과 동시에 강제징집돼 특전사 수중폭파요원으로 복무했다. 군 복무 시절 폭파과정 최우수, 화생방 최우수 표창을 받는 등 특A급 사병으로,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때 미루나무 제거조에 투입될 정도로 `정예용사'였다. 이 같은 군 이력은 이번 대선에서도 문 대통령의 `투철한 안보관'을 표현하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1978년 제대 이후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 이듬해 1차에 합격했다. 그러나 1979년 부마항쟁과 10·26, 1980년 `서울의 봄'을 거치며 또다시 구속돼 2차 시험 합격 소식은 유치장에서 들었다. 사법연수원 시절, 현 아내인 김정숙씨와 결혼해 문준용씨 등 슬하에 1남1녀를 낳았다.

참여정부의 핵심 역할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지만 시위 구속 전력으로 판사로 임용되지 못한 문 대통령은 부산으로 내려가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198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다. 일곱 살 위인 노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난 뒤 문 대통령은 "'같은 과(科)'라고 느꼈다"고 했다. 두 사람은 합동 법률사무소를 차리고 부산·경남 일대 시국 사건을 수임하며 이름을 알렸다. 1988년 노 전 대통령이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자 문 대통령은 "뒷일은 내게 맡기고 정치권으로 가시라"고 했다.

'법무 법인 부산'을 세우고 변호사 생활을 하던 문 대통령은 2002년 대선에 출마한 노 전 대통령의 부산 선대본부장을 맡았다. 청와대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을 지내며 임기 내내 노 전 대통령 곁을 지켰고, 격무와 스트레스로 치아 10개가 빠졌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2010년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문 대통령은 2011년 자서전 '운명'을 쓰고 현실 정치에 발을 내디뎠다. 2012년 4월 총선 때 부산 사상구에서 당선됐다. 그해 12월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 나서 야권 후보 역대 최대인 1469만표(득표율 48%)를 얻었지만 낙선했다.

문 대통령은 이후 본격적인 정치에 나섰다. 2015년 2월 당대표 선거에서 박지원 의원에게 이겼다. 그는 '혁신'을 추진했지만 결과는 국민의당 분당(分黨) 사태로 이어졌다. 안철수후보와 중도 성향 호남 의원들이 당을 나갔고 새 인물들이 민주당을 채웠다. 문 대통령은 이를 '혁신'이라고 했고, 다른 쪽에선 '분열' '패권'이라고 했다. 그가 뒤로 빠지고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데려와 치른 20대 총선 결과는 '민주당 1당'이었고, 지난달 3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문 대통령은 재수 끝에 9일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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